▲ 중국 여자1위 위즈잉(17)은 어릴 때부터 당찬 여걸풍모를 지녔다.
요즘 중국 얘기를 빼면 센세이션할 일이 별로 없는데, 얼마 전 중국 신인왕전에서 여자선수 위즈잉(17)이 '95후'의 대표 리친청(16)을 물리치고 사상 첫 여자 신인왕에 올랐다고 한다. 여자 신인왕은 한국 일본 중국에서도 일찍이 전례가 없던 일. 조금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위즈잉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2011년 한국여자바둑계는 십 수 년 간 철옹성을 쌓았던 루이나이웨이가 느닷없이 중국으로 돌아가자, 여자바둑계는 갑자기 공동화현상이 생길 줄 알았다. 절정고수 루이만 없으면 힘을 더 쓸 줄 알았던 박지은 조혜연 이민진 등 '언니트로이카' 중에서 득세할 줄 알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15세 '연승소녀' 최정이 기대주로 떠올랐다.
필자가 최정보다 한살이 어린 위즈잉을 처음 본 것은 2012년 1월 한중교류전 때였다. 당시만 해도 15세 최정보다 더 어린 여자기사가 중국국가대표로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중국 측에 꼭 위즈잉과 최정을 한판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아주 흥미진진하게 그 대국을 구경했는데, 결과는 최정의 패배했다. 최정이 컨디션이 좋지 않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최정은 위즈잉을 제외하곤 중국 여자국가대표에게 모조리 승리를 거두었다. 필자는 당시 그 한판의 친선대국이 곧 한중 여자바둑계를 대표할 기사들의 매치였다고 믿었다.
그날 밤 한국 팀은 회식을 가졌다. 그 자리에는 위즈잉을 비롯해 렌샤오 당이페이 랴오싱원 등 4명의 중국기사도 초청해 같이 식사를 했다. 당시 무명에 가깝던 당이페이(이후 BC카드배 준우승)가 술자리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한국 40명에 중국 4명으로 10:1의 술싸움인데, 얼추 비슷한 형세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거기엔 당이페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술꾼이 혼자 맥주 30병에 소주를 들이붓고 있었으니, 순진한 한국선수들의 기가 질려 버렸다. 한국 선수들은 "북경서커스를 여기서 보네"하면서 당이페이의 돌출행동을 '안주' 삼았다.

▲ 2012년 황룡사쌍등배에서 만난 최정(승)-위즈잉. 위즈잉은 패하자 분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당이페이보다도 더 히트 친 안주가 있었다. 그게 바로 14세 소녀 위즈잉이었다.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던 그녀가 벌떡 일어나더니 맥주 한 병과 잔 두 개를 들고, 맨 끝에서 조용히 밥 먹고 있는 막내 이동훈에게 다가가 잔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속칭 '러브 샷'을 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13세 이동훈은 그게 뭔 뜻인지 몰라 눈만 껌벅거리는 상황.
14살짜리 소녀가 그것도 아버지뻘 되는 유창혁 사범도 있고 필자도 있고, 대부분 성인이 있는 자리에서 너무나도 당당하게 주도를 하더니 분위기가 애매하게 돌아갔다. 중국 선수들도 '말려야 하지 않을까' 하고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결국 40명이 넘는 일행들은 그녀의 '러브 샷!' 외침에 일제히 빠져들고 말았다. 상상해보라. 14세 여왕의 말 한마디에 40명의 노 신하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전하! 만수무강하소서!"하는 외치는 광경을.
위즈잉이 당돌하다는 얘기는 이때부터 돌기 시작했다. 필자도 어렸을 때는 X세대답게 꽁지머리에 헤드셋으로 무장하고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대국장에 나타나기도 하는 등 제법 당돌하다는 평을 들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했던가. 필자에게는 위즈잉은 너무 강한 인상이 남아서 '이 아이는 분명히 뭔가 하겠구나'하고 그때부터 생각했었다. 그런데 '뭔가'가 지난주에 터진 것이다.
예전에 흑마(黑馬 헤이마)라는 말이 궁금했는데 '다크호스'를 뜻한다고 했다. 같은 의미로 귀마소녀(鬼馬少女)라는 단어는 홍콩과 대만에서 많이 쓰는 말인데, 영민하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바로 97년생 중국 최초의 여자신인왕 위즈잉에게 주어진 딱 어울리는 닉네임이었다.

▲ 리친청-위즈잉(승) 중국 신인왕전 결승 3국.
2월말 상하이 인근 핑후시에서 이세돌-구리 10번기가 끝나고 바로 상하이에서 농심배가 열렸다. 이 대회는 한국 주장 박정환이 선전했지만, 3연승까지는 무리였던지 막판에 스웨에게 패해 2014년 첫 우승을 중국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중국의 많은 기자들은 상하이를 떠나지 않았다. 더 큰 뉴스거리가 있었기 때문인데, 농심배 이튿날 바로 상하이에서 제21회 건교배 신인왕전 결승3번기가 있었던 것.
결승전 주인공은 양딩신 셰얼하오와 함께 98년생 중국 3대천재라 불리는 리친청과 '귀마소녀' 97년생 여자국가대표 에이스 위즈잉.
1국은 리친청이 중반 이후 난조를 보이며 위즈잉 승리. 2국은 리친청의 완승. 3국 최종국은 위즈잉의 믿을 수 없는 역전극으로 끝났다. 3국을 지켜본 본 한국의 젊은 기사들은 '리친청이 미쳤다.' '너무 얕보고 둔 티가 난다.' 등 천운이 따라주었다고 했다. 바둑은 분명 1,3국 모두 리친청이 잘 두다가 갑자기 무너졌기에 충분히 그런 말이 나올 수도 있다.
남녀가 공히 같은 무대에서 겨루는 종목은 바둑이 유일하다. 그러나 남자에 비해 약간 여자선수가 약하다는 것은 이미 정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일 통 털어서 남녀 공히 출전한 타이틀전에서 정상에 오른 기사는 루이나이웨이가 한국의 국수에 오른 이후 위즈잉이 처음이다. 중국 신인왕전은 저우루이양 스웨 판팅위 등 '황금가락지 낀' 선수들만 섭렵했다고.
필자는 재주가 못하지 않은 우리의 최정이 먼저 그 길을 갔더라면 하고 생각해본다. 가령 최정이 이동훈에게 신인왕전 결승에서 승리해 바둑계를 놀라게 했다면? (이동훈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본격적인 봄 4월엔 황룡사배세계바둑연승전과 천태산갈현녹차배(구 화정차업배) 세계바둑단체전이 있고. 5월엔 일본에서 글로비즈배 세계신예바둑대회가 열린다. 최정과 위즈잉의 진검승부가 이어질 공산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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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YGEM / 김성룡 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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